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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논평]

근로기준법 개정, ‘일자리 공유의 철학이 없다

- 장시간·저임금의 비정규 노동자들에겐 좌절감만 안겨


 

노동시간 단축의 기본 취지는 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줄이는 것과 함께 기계화·자동화로 축소되는 일자리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노동시간 축소로 인한 임금소득의 하락이 초래할 사회적·경제적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도 노동시간 단축과 필수적으로 연동해 다뤄져야 한다. 지난 228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자본의 이해를 염려하느라 노동시간 단축 논의의 본령과는 동떨어진 졸속 개정이 되고 말았다. 특히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또 다른 좌절감을 안겼다.

 

우리나라는 2004년 주 5일제(40시간) 노동시간을 법제화하였지만, 멕시코와 함께 OECD 세계 최장시간 노동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난 적이 없다. 전체 고용의 20%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고용된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권 보호를 포함한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가 되어 왔고, 연장노동 12시간을 포함한 주 52시간 상한제 역시 550만 명이 고용된 근로시간특례업종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아 추가 12시간의 연장근로가 허용되어 왔다. 여기에 주말 노동은 연장노동이 아니라는 정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인해 주말휴일 2일 동안 16시간의 추가적인 노동시간 연장이 가능했다. 사실 한국 노동자들 대다수에게 노동법의 노동시간 규제는 실질적 의미가 없었다.

 

연장노동을 포함해 주 52시간을 노동시간의 원칙적인 상한으로 정한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적용 범위와 시행 시기에서의 후퇴가 너무 크다. 사업장 규모별로 시행 시기를 달리하고 있는 데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65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는 3511천 명이나 된다.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시간을 허용하고, 부칙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도 열어놓았다. 여기에 휴일노동 중복할증을 없앤 것은 현행 근로기준법이 담고 있는 비용 가중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 유인 효과도 제거한 개악이다.

 

마땅히 폐기해야 할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도도 5개 업종을 존치시켰고 폐지 시한조차 정하지 않았다. 운송업과 보건업은 시민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로서 지금도 과로사와 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한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는 업종이다. 따라서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그동안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온 노동자일수록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을 가장 적게 가장 늦게 적용받는, 불평등의 심화로도 특징지을 수 있다. 관공서 공휴일 규정을 전면 도입하겠다는 유의미한 개선도 이번 노동시간 단축안의 전체적인 퇴행적 성격을 바꿀 수 없다.

 

유럽 각국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주 30시간 이하를 향해 가는 현실에서 주 52시간 상한제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제조업은 물론 물류업 등 상당수 서비스 업종에서도 노동자 없는 생산과 관리가 척척 진행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노동시간의 법적인 규제 없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이미 기계화·자동화를 통해 노동력 투입시간을 최소화하는 자본 경쟁의 동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52시간 상한제는 목하 진행 중인 기계화·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잠식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35시간 + 5시간 연장 상한제의 전면적인 시행 정도는 되어야 장시간 노동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줄이고, 사회적 노동시간의 축소를 통한 일자리 공유가 가능해진다. 물론 이러한 노동시간 축소는 전후 복지국가 시기의 완전고용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시대의 발전 단계에 맞춰 노동자들의 소득보장 방안에 대한 국가적 논의와 맞물려야 한다. 재계의 엄살을 핑계로 중대한 문제를 졸속 통과시킨 지금의 보수정치권에는 사치에 가까운 기대일지로 모르겠다. 노동당은 국회를 통과한 이번 노동시간 단축안에 대해 미래를 예비하기는커녕 시대를 반영하지도 못한 졸속이라 평가한다.

 

201832

노동당 정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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