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노동당 / 역사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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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재창당을 완료한 노동당은 2014년 지방선거 준비 체제로 돌입했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유의미한 전략이 가능한 지에 대한 당 내 논쟁이 일었다. 이용길 지도부는 정치적 시민권을 재획득한다는 목표로 광역의원 집중 출마 방침을 정했다. 광역의원 지역구 선거에 다수 출마해 전국 합산 득표 2% 이상을 달성하여 국고보조금 지급 대상이 되자는 소위 '2% 전략'을 입안한 것이다. 당 내 논란을 거친 끝에 이 같은 전략을 결정하고 다수의 후보를 모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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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의원 지역구 후보 70명 출마라는 목표는 달성했으나 득표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2014년 지방선거는 노동당 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도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진보진영 전체가 부진을 면치 못한 선거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노동당은 2014년 7월 재보궐선거에 역량을 집중해 대응했으나 역시 저조한 득표에 그쳤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당 내 일각에서 진보정치 재편에 관한 전당적 토론 요구가 제기되었다. 이는 당 내 일부 인사들에 의해 사실상 정의당과의 통합까지 고려한 노선 전환 요구로 이어졌다. 당은 또다시 통합이냐 독자노선이냐의 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2014년 11월 정책당대회에서 당 진로 논의가 주요 쟁점이 되었다. 이어서 12월부터 시작된 6기 대표단 선거에서도 진보정치 재편에 관한 의견에 따라 후보 구도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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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015년 1월 통합을 공약으로 제시한 나경채 후보가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이후 나경채 지도부는 진보정치 재편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5년 6월 정기당대회에서 통합을 위한 당원총투표 부의 안건이 과반 득표에 미달하여 부결됨으로써 재편 시도는 무산되었다. 나경채 대표를 비롯한 재편파 지도부는 사퇴했으며 통합을 요구하는 당원들과 함께 집단 탈당했다. 
2015년 9월에 7기 대표단 선거를 실시해 알바노조 위원장 구교현 후보를 새로운 대표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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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분열 사태 속에서 출범한 구교현 지도부는 이후 한 달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4분기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4분기 사업계획은 박근혜 정부의 소위 노동개혁이 국정과제로 제기된 상황에서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노동당의 의제를 제기하여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정세에 대응하는 것이 전반적인 기조였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드라이브에 맞서 국민투표운동, 탈옥선 전국순회 및 3주간의 집중행동, 국회 앞 48시간 연속 정당연설회 등을 연말까지 꾸준히 진행했다. 이는 분열 사태에 의해 위축된 당 내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노동개악 관련법 연내 통과를 저지하는 흐름에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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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016년 4월에 20대 국회의원 총선이 실시되었다.

노동당의 총선 전략은 전략지역구 집중 방침과 비례대표 득표라는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되었다. 노동자 밀집지역을 전략지역구로 선정하여 지역구 당선을 목표로 하고,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유의미한 득표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사실상 하나의 축이나 다름없었다. 일반지역구 후보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정당투표에서의 유의미한 득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전략지역구 당선이 실질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었다.


전략지역구는 애초에 울산 동구와 경남 거제 두 곳을 목표로 했다. 거대 조선소를 기반으로 하는 두 지역구에 총선 성패가 달렸던 것이다. 그러나 거제에서는 끝내 출마가 무산되었다. 결국 울산 동구 한 곳만 출마하게 되었다. 이갑용 울산시당 위원장이 전략지역구 후보로 출마했다.


유일한 전략지역구의 성패는 후보단일화에 달려있었다. 문제는 후보단일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만한 지렛대가 없다는 점이었다. 지역구 후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중 전략지역구는 울산 동구 하나뿐이었다. 전국적 구도를 놓고 협상하기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빈약했다. 그런 처지에서 현대중공업 조합원 투표로 단일후보를 결정하자는 제안이 왔다. 별다른 조건을 제시할 만한 지렛대가 없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 여론조사로 시행된 조합원 투표 결과 무소속 김종훈 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애초의 합의대로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고 당사자들에게도 전달되지 않았기에 지지율은 알 수 없었다. 사실상 유일한 총선 전략이 좌초되는 충격적인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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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이 치러졌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폭정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여소야대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노동당의 성적은 예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비례대표 정당투표 0.38% 득표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


노동당은 총선 참패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우여곡절 끝에 ‘평가와 전망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총선 평가만 작성하고 전망은 수립하지 못했다. 정파 대립에 따른 내분까지 겹쳐서 혼란은 극심해졌다. 결국 7기 대표단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러 7월 전국위원회 자리에서 총사퇴하기로 결정했다. 단지 총선 결과에 따른 책임만이 아니라 정파 대립에 의한 분란과 파행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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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10월에 8기 대표단 선거를 실시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민주노총 위원장, 울산 동구청장 등을 역임한 이갑용 후보를 새로운 대표로 선출했다.


8기 대표단은 출범 직후부터 비상한 정세에 직면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폭로되면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하고 촛불 항쟁이 벌어졌다. 노동당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총력 투쟁에 나섰다. 노동당의 투쟁은 박근혜 정권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사건에 일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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