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위원회(준), 여성위원회(준) 성명] 퀴어 노동자와 “120만 민주노총”의 자긍심에 허락은 필요 없다

작성자
노동당
작성일
2024-07-22 09:17
조회
956


퀴어 노동자와 “120만 민주노총”의 자긍심에 허락은 필요 없다

-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제주퀴어프라이드 보도 축소와 검열 사태에 부쳐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사라진 “120만 민주노총의 자긍심”

지난 7월 13일 제주퀴어프라이드가 개최되었습니다. 2년만에 열린 제주퀴어프라이드에 제주와 전국의 퀴어와 앨라이, 그리고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모여 성소수자 자긍심을 드러냈고, 퀴어의 존엄한 삶과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뜻을 모았습니다. 이날 민주노총 역시 “생산과 역사의 주인인 퀴어 노동자의 자긍심은 나의 자긍심이며, 120만 민주노총과 2천 5백만 노동자의 자긍심”이라는 제주본부장의 발언을 통해 민주노총 안팎의 퀴어 노동자들과 연대하겠다는 결의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제주에 울려퍼진 이 결의의 외침은 바다를 건너가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민주노총이 발행하는 기관지인 <노동과세계>에 송고된 제주퀴어프라이드 기사 일부가 검열, 축소되어 발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동과세계> 편집을 담당하는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기사의 제목과 내용에서 “120만 민주노총”과 “2천 5백만 노동자”를 삭제하여 기사를 발행했고, 7월 18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자 “주변의 의견을 구했는데 (표현이) 과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12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중앙집행위원회 성원들의 항의가 빗발친 끝에야 교육선전실장은 사과했고, 기사 역시 원문대로 환원되었습니다.


노동과 퀴어, 노동해방과 퀴어해방은 분리될 수 없다

“120만 민주노총”, “2천 5백만 노동자”라는 표현은 지금껏 민주노총의, 더 나아가 한국 노동자운동의 입장과 발언에서 숱하게 등장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120만 조합원들과 2천 5백만 노동자들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런 표현을 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120만 민주노총”, “2천 5백만 노동자”라는 표현은 민주노총 운동과 전체 노동자운동을 환유(換喩)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동의나 허락의 뜻을 함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 자긍심을 120만 민주노총과 2천 5백만 노동자의 자긍심과 연결짓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민주노총과 퀴어가, 퀴어와 노동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또한, 성소수자의 해방이, 120만 민주노총이 목표로 하는 2천 5백만 노동자 모두의 해방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때에는 관용어구처럼 쓰이던 “120만”, “2천 5백만” 발언에 대해, 이것이 성소수자 자긍심과 연결될 때에만 그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퀴어와 노동을 분리하는 것이며, 민주노총 내에도 있는 퀴어 노동자들의 존재를 지우는 행위입니다.


성소수자 자긍심 검열과 삭제를 규탄한다

기사는 원문대로 환원되었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던 민주노총 안팎의 성소수자들이 받은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폭로된 7월 19일에는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감리회에서 출교된 이동환 목사의 출교 처분이 효력정지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있었으며, 그 전날인 7월 18일에는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민주노총 역시 산별노조와 본부의 입장으로 이를 축하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성소수자 운동의 가장 큰 우군 중 하나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민주노총이 성소수자 자긍심에 대한 검열과 삭제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많은 성소수자와 연대자들은 아연실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소수자이면서 노동자인,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중의 억압을 경험하는 퀴어 노동자들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은 19일 규탄 성명을 통해 “민주노총 사무총국, 지역본부, 법률원에는 성소수자 당사자가 함께 일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들의) 상실감과 모욕감을 어떻게 해결하실 것입니까?”라며 성토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맞서 싸우는 투쟁의 또 다른 당사자이자 동지로서, 노동당 역시 민주노총의 성소수자 조합원들의 상처와 분노에 깊이 공감합니다. <노동과세계> 지면상의 성소수자 자긍심 검열과 삭제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노력하겠다’는 말을 넘어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성소수자 투쟁에서 민주노총은 태생적으로 외부자일 수 없다’던 집행부에서 발생한 ‘성소수자 투쟁에만 적용된 선택적 검열사건’ 입니다. 단지 ‘노력하겠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자긍심이 120만 민주노총의 자긍심이 될 수 있도록, 혐오와 배제를 위해 조직 내의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민주노총의 감수성 점검과 재발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노동당은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의 요구를 적극 지지합니다. 이 사태의 책임을 통감한다면 <노동과세계>의 발행인인 양경수 위원장이 직접 사과하고 대책을 발표해야 합니다. 사과문 공개게시, 교육선전실장에 대한 징계, 문제해결기간 중 교육선전실 소속 성소수자 조합원 보호에 관한 신속한 논의, 중집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 논의와 결정 집행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광장에서, 민주노총을 다시 “무지개동지”로서 만나고 싶습니다. 노동당은 민주노총 안팎의 모든 성소수자 노동자들과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2024.07.22.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준), 여성위원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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