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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기획 : 중심에 서다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를 소개합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기획 : 중심에 서다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를 소개합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기획 : 중심에 서다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를 소개합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9259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기획 : 중심에 서다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를 소개합니다 나도원 2021 정기당대회 준비위원장, 편집위원 “라면 하나 주세요.” - 어느 당대의원의 회고  마침 그날 당대회는 사연 깊은 동네에서 열렸다. 회의는 끝날 줄 몰랐고, 대의원들의 식사를 위하여 정회하는 동안 대회장 주변 청소년기를 보낸 옛 동네를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홀로 터벅터벅 걷던 발길이 어느새 졸업장을 받은 고등학교 담벼락 옆 분식집에 이르렀다. 하굣길에 드나들던 시절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분식집 간판에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불쑥 들어가 라면 한 그릇 주문했더니, 곱빼기 분량 정도의 라면이 식탁 위에 떡 놓였다. “어이구, 양이 엄청 많네요?” “이 정도는 먹어야 뭐라도 하지!”  2011년이었다. 당시 진보신당의 진로를 결정한 당대회에 참석한 한 대의원은 혼자 라면 식사를 마치고 당대회장으로 돌아와 길고 힘든 회의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역시 많은 추억이 묻힌 근처 호수를 배회하며 여러 생각에 잠겨야 했다.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바라며 당에 들어와 당 대의원으로 참석한 그 날 이후, 그의 삶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그날의 무거운 결정에 자신도 책임지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이다. 노동당과 당대회 - 당대회는 최고의결기관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에 ‘코로나19’까지 겹친 한국사회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노동당 정기당대회가 열린다. 노동당은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조직 안정화와 활동성 제고 그리고 정치력 확장을 위하여 노력해왔다. 기회주의. 타협주의, 패배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활동방식 실험과 적극적인 좌파연대 모색에 주력했다. 이제 강자정치·부자경제 종식과 정치교체·정치혁명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당 노동당이 2년 만에 정기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 2021년 9월 11일 (토) 14시 (사전행사 13시부터) ○ n90센터 지하1층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313)  당대회는 ‘당의 최고의결기관’으로 ‘당원의 대표자들이 모여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이다. 일반적이었다면 현 집행부가 선출된 2019년 가을 이후인 2020년 상반기 즈음에 열렸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20대 총선’과 ‘코로나19’가 이어졌고, ‘코로나19’ 상황이 더욱 악화하면서 2021년 9월에 개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당원캠프’, ‘정책대회’ 등을 통하여 당적 교류와 논의의 장이 꾸준히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요 안건은? - 1. 당대회의 권한, 소집, 상임집행위원회의 권한 변경 - 2.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준비위원회 설치  2021 정기당대회 상정 안건은 세부적으로 셋이지만 주요 안건은 둘이다.  첫 번째는 ‘1-1. 당헌 개정의 건’으로 정기당대회를 2년 주기가 아니라 해마다 개최하여 매년도 주요 정치사업 의제를 심의, 의결하자는 안이다. “당대의원들에게 매년 당이 집중해야 할 핵심 정치 의제를 심의하고 결정하게 함으로써 당 활동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더 많은 당원이 해당연도 당의 핵심 정치사업 의제를 알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안건이 통과되면 당의 사업계획 확정을 위한 안건 제출방식이 더 많아지고 심의 단계 또한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 안건1-1. ‘당헌 제3장 제10조 제11조 제17조’ 개정의 건(안) 당헌 3장 대의기관 제10조(권한) 6. (신설) 매년도의 주요 정치사업 의제 심의, 의결 제11조(소집) ① 정기당대회는 1년마다 의장이 소집한다. 제17조(상임집행위원회) ③ 상임집행위원회의 주요 권한은 다음과 같다. (신설) 내년도 주요 정치사업 의제의 제출 (신설) 주요 정치사업 의제의 집행을 위한 사업계획의 수립 및 집행  두 번째 주요 안건인 ‘2.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준비위원회 설치의 건’은 노동당이 2020년 벽두부터 추진해온 사회주의-좌파세력과의 교류와 연대, 2021년 사업계획으로 채택한 ‘체제전환-좌파연대’ 정치사업, 그리고 지난 7월부터 가동 중인 ‘사회주의 대선·지선 그리고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원탁회의’의 연장선에 있다. 당 확장과 사회주의 대중정당운동 확산을 공식·조직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안건으로, 안건이 통과되면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를 준비하여 다음 당대회에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안건2.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준비위원회 설치의 건(안) ◯ 설치 목적 - 사회주의를 대안정치로 세워내고 사회주의 대중정당 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함. - 사회주의 좌파운동세력의 사회주의 대중정당운동으로의 결집과 함께 대선-지선투쟁을 전개하기 위함. ◯ 활동 기한 - 2021년 정기당대회 인준 이후 ~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당대회까지(2022년 상반기까지) ◯ 준비위원회의 역할 - 강령과 당헌, 당규, 당명 채택 방안을 포함해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관련 협상을 진행하여 상시적으로 의결기구에 보고한다. ◯ 구성 - 구성 원칙 : 당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단위로 구성 - 구성 : 상임집행위원회(2명) 광역당부위원장(1~2명) 정책위원회의장(1명) 등 5인 내외 - 인선은 상임집행위원회에 위임한다 ◯ 의제 -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에 관한 사항 일체 다양한 의미의 장이 될 정기당대회 - 열정의 5시간, 결의의 300분을 고대하며  2021 정기당대회는 사전 행사를 포함, 9월 11일 오후 1시에 시작하여 6시 안에 마칠 예정이다. 거리두기 단계와 전국 대의원 동지들의 교통 편의를 동시에 고려하여 장소를 물색하다 보니 회의 공간은 예의 당대회 장소에 비하면 오붓하고, 시간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당대회를 준비하는 성의와 임하는 무게는 다르지 않다,  사전 행사는 특별 교육 강연 ‘노동당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여 각 광역당부가 추천하는 ‘올해의 당원’과 당원들이 직접 추천할 ‘특별한 당원’ 시상식, 그리고 줄을 잇고 있는 노동당 입당 행렬에 대한 감사 의미로 ‘2021년 신입 당원 환영식’을 가질 예정이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 족자 기증식, 연대 조직 대표자들의 동영상 축사에 이어 뜻있는 축하 공연도 마련하고 있다. 한편, 노동당 홍보미디어기획단 영상팀은 5개 의제기구 소개 영상을 제작하여 공개할 계획이고, 대의원들을 맞이할 부스와 인터뷰 촬영도 준비 중이다.  세상은 구조적으로 상하의 세계이고, 대처하는 사유와 태도에 따라 좌우로 나뉜다. ‘좌우를 넘어’ 운운하는 식의 진실에 대한 외면, 심지어 부정은 몰역사이며 현 체제에 대한 수긍에 불과하다. 명확한 인식과 분명한 태도를 견지하는 노동당의 2021 정기당대회가 절박한 체제 전환의 가능성을 한 장면씩 열어 보이는 장, 한 걸음씩 내딛는 장, 자기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가는 장을 이루길 기대한다. 노동당, 즉 당원과 대의원 동지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 ※ 공고 <2021 정기당대회 소집> http://www.laborparty.kr/?page_id=13725&mod=document&pageid=1&uid=433 ※ 일정 <2021년 정기당대회 소개와 안건 설명/토론회> http://www.laborparty.kr/?page_id=13725&mod=document&pageid=1&uid=454 ※ 영상 <2021년 정기당대회 소개와 안건 설명> https://youtu.be/VgwTZmebezI

Date 2021.08.30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1 | 조회 9438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 :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 정리 : 이용규 편집위원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여의도 맞은편에 마르크스 사진이 걸린 건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상징성이 크다. 한국처럼 이렇게 이념이 통제 및 억압 당하는 경험을 가진 나라가 없다. 몇 년 전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에 방문한 적이 있다. 연구소 차원에서 매년 <아카데미 유로파>에 참가한다. EU가 주관하는 행사로, 유럽에 대해 여러가지를 배우는 2주간의 아카데미다. 맑스 생가를 방문하는 것이 아카데미 프로그램 가운데의 하나다. 매우 상징적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맑스는 유럽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인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맑스라면 아직 금기의 영역이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세계적 흐름에 뒤쳐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당에서 맑스 사진을 걸고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맑스를 혐오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상적 후진성, 퇴행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사 외벽의 빨간 걸개를 보면서 노동당이 한국 사회를 계몽시키는 사상적, 문화적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어떤가. 답답하고 우울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 코로나는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우울함을 던졌지만 중요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것을 코로나 옐로우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정상이라 알고 살아온 이 모든 것이 대단히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체제가 근본적으로 비정상적인 체제일지도 모른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슬로건은 그래서 매우 시의적절하다. 코로나의 첫 번째 경고: 사회 없는 사회  어떤 경고를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고 있나. 우리가 가장 코로나를 통해 분명하게 인식한 것이 뭔가.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모두가 다 행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행복, 모든 사람의 안전, 모든 사람의 건강이 나의 행복, 나의 안전, 나의 건강의 전제라는 걸 배웠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경고이다. 한국 사회에는 그러한 가치가 너무 결여돼 있다. ‘더 소셜The Social’,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가 한국처럼 결여된 나라가 없다.  한국 사회를 ‘소사이어티 윗아웃 더 소셜Society without the Social’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인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각자도생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자들의 무리다. 거의 모든 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OECD의 사회관계지수라는 것이 있다. 한 개인이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얼마나 깊은 결속을 맺고 사는가를 측정한다. 한국이 계속 꼴찌다. 평가항목 가운데 ‘타인에 대한 신뢰’는 압도적으로 꼴찌. 한국은 ‘사회’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사회다. ‘더 소셜’이라는 가치가 불온시되는 사회라고 봐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라는 어떤 곳에서는 ‘social’이란 말을 당명에 붙일까 말까를 놓고 1년 동안 고민했다. 정말 이상한 사회다. 어떤 사회가 이런가. 이를테면 독일은 이와 정 반대다. 독일에서는 ‘소셜’하지 않다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다. 독일 말로 ‘Asozialität’. 상대방에게 이러면 싸움난다! ‘인간 이하다, 미쳤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런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프랑코 벨라르디라는 이탈리아 철학자가 한국을 방문하고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사회는 이해하기 어렵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리듬의 초가속화라는 네 가지 특징이 한국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외국 철학자가 한국 사회를 이다지도 잘 볼 수 있을까 놀랐다. 한국사회의 끔찍한 측면이 그정도로 보인다는 것이겠지.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가장 강력한 경고는 그것이다. 그런 사회적이라는 가치,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코로나의 두 번째 경고: 공공 없는 공화국  두 번째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 선거를 했다. 선거가 무엇인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개선하는 일종의 과정이다.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와 저소득층의 위기다.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생존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진 적이 있나? 없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었나? 민주당이라는 정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도 없다. 이 정당을 견제하는 정당은 더 없다. 이것이 쟁점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존재가 없고 취약하기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나라 구실을 못하는 나라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세월호를 두고 ‘이게 나라냐’라고 했다. 지금은 더하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  ‘리퍼블릭 윗아웃 더 퍼블릭republic without the public’. 공화국은 공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 그런데 공적인 가치가 없다. 이게 무슨 공화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조항은 임시정부를 만들었던 선각자들이 건국강령 1조로 넣은 것이다. 그들이 꿈꾸던 국가는 이런 게 아니었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공적인 가치가 부재한 나라다. 코로나가 이걸 너무나 분명하게 폭로해 준 것이다.  국민들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에 공공병원이 10%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공공병원 비율이 가장 적은 나라다. 심지어 미국도 공공병상이 20%다. 초기에 대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병상이 없어서였다. 어떻게 된 것인가? 공공병상이 없었다. 대구 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에 있는 빅5 병원(삼성, 아산, 세브란스, 카톨릭, 서울대) 가운데, 국립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빅4에서 내놓은 병상은 단 7개였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해내지 않고 완전히 시장에 내맡긴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에서 고등교육의 공교육 비중이 제일 낮다. 우리 대학의 87%가 사립대학이다. 이런 나라가 없다. 실제로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자 독일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코로나 대응 자금을 재정 편성한 것인다. 국가 재정의 3분의 1을 편성했다. 1조 유로, 우리 돈 1350조였다. 이를 위해 독일 정부가 약 20% 이상의 부채를 졌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와 손해, 부담의 90%까지 국가가 감당했다. 임대료, 인건비 따위의 90%를 감당해줬다. 우리는 4차 긴급 재난지원금으로 20조를 편성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착한 임대료 운동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9시 뉴스 끝나고 이웃돕기 성금을 모은다. 군사독재 시절에 하던 일들이다. 신파극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잡아대는 퇴행적 행동. 돌아다니며 계속 비판했는데 지금 없어졌다. 이건 무능인가 직무유기인가. 그러다 보니 재경부 장관이라는 자가, 국가부채가 45% 수준이라며 ’재정이 건실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선진국 평균 국가부채는 135%다. 그 대신 우리의 가계부채가 108%다. 국가부채는 가장 낮고 개인부채는 가장 높은 게 대한민국이다. 이 위기에서 국가는 아무것도 안하고 개인이 은행빚으로 살아남고 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공적 가치가 아니라 사적 이해밖에 없는 공동체다. 공공의 책임, 공공의 가치를 국가가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다. 코로나의 세 번째 경고: 생태 없는 경제  세 번째는 ‘이코노미 윗아웃 이콜로지economy without ecology’.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나. 경제가 생태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생태적인 상상력이 완전히 없다. 전세계에서 가장 생태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연구소 연구원이 재작년 베를린을 다녀와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취리히에 있는 친구를 베를린에서 만났다는 거다. 취리히에서 베를린에 오는데 기차로 8시간, 요금은 150유로가 든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이고 50유로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취리히에 사는 친구가 기차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 이해가 안 된다, 시간도 요금도 더한데. 그런데 그 취리히 친구는 베를린으로 간 친구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생태적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유럽에서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유럽에서 이미 ‘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e’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비행기 타는데 대한 부끄러움이다. 기본적인 생태적 관점을 갖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없다는 게 유럽은 상식이다. 유럽은 그러한 인식 때문에 독일인의 82%가 생태 보호를 위해 소비를 포기할 수 있다, 는 명제에 동의한다. 소비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소비는 지금의 욕망 때문에 미래 생태를 포기하는 것이니까.  한국은 어떤가. 독일 아이들의 대다수가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데, 한국은 ‘소비하는데 일자리가 생긴다, 경제가 돌아간다, 국가가 부강하다’고 한다. 경제논리의 전일적 지배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 유럽에서는 ‘21세기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인류가 최후의 인류가 될 것이란 것. 나는 살만큼 살았지만 내 자식, 손주는 어쩌면 마지막 인류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다행히 마지막 인류가 아니더라도, 이 파괴 속에서 대단히 고통스러운 삶은 살다가 갈 것은 확실하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기후깡패’라고 불린다. 이번(2021년 4월 세계기후정상회의)에도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내놓지 못했다. 투표장에 가서 보니 ‘녹색당’이 아예 없었다. 독일에서는 9월 총선이 있을 것이다. 문명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것과는 정반대로 세상이 구성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녹색당이 제1당으로 집권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저지하자는 정당이 녹색당이다. 지금까지의 성장과 발전은 죽음으로의 성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저 녹색당은 ‘항의정당Protest Party’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수권을 논할 정도가 됐다. 놀라운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당, 사민당, 좌파당 3개 좌파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재작년 유럽의회선거를 보면, 유럽 전역에서 녹색당이 득표 2위를 했다. 작년에 있던 프랑스 지역 선거에서도 녹색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는 생태적 상상력이 도착하지 못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이 1%도 득표를 못했다. 지금의 정치지형이 매우 세계적 흐름과 유리되어 있다. (엮은이 주: ‘9월 총선’은 2021년 9월 26일 시행되는 독일 연방하원 선거를 말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 선거를 끝으로 총리직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2021년 8월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대체로 기민련/기사연(여당)이 25%,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이 각각 18~20% 가량 득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한국 사회는 함께 사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책임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태국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가치, 공공적 가치, 생태적 가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미래가 없다.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한국이란 사회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외부에 있는 외부인들, 외국 학자들에 의하면 매우 놀랍고 경탄할 만한 사회다. 본인 연구소에서 전체 컨퍼런스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배울 기회다. 한국은 많은 외국 학자들이 존경하는 나라다. 우리가 가진 존경할만한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왜 그런가? 가장 큰 까닭은 ‘민주주의’. 특히 중국, 일본 학자들에게서 그렇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 항의하는 시위 규모를 보면 정말 얼마 안 된다. 일본은 봉건, 하류 민주주의다. 역동성을 상실한 미래가 없는 나라. 중국은 어떤가. 베이징대학 교수들이 어느 순간부터 말을 조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양심적 학자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정말 한국 민주주의를 부러워한다. 시진핑 이후 중국 민주주의는 완전히 퇴행 중이다. 그러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 민주주의도 위기다. 시리아 사태로 난민들이 몰려들자 극우 정치인들이 이를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했고 이게 먹혀들었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겪었고 프랑스에선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결선투표까지 올라갔었다. 미국도 트럼프에 의해 준파시즘 국가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2016년 광화문에서 촛불을 통해 대통령을 탄핵하고 이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외국의 많은 학자들이 놀라워했다. 전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독일의 <Die Zeit>(옮긴이 주: 독일의 진보 성향 주간지)의 칼럼에서 이르길, “이제 유럽과 미국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민주주의의 시대는 저무는가 하는 상황에서 유라시아대륙 끝의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다시 타올랐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외부에서 크게 인정한다. 오히려 우리들이 우리 민주주의를 그렇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만큼 평가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수출국가다. 오늘날 아시아 독재국가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공부한다. 본인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모두 대학에서 겪었다. 주로 일본 책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공부했다. 우리가 지금 그런 모델이 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 민주주의를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4.19혁명은 ‘20세기의 제3세계 가장 위대한 민주혁명’이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그정도로 평가 못한다. 4.19는 1960년 일어나서 그 다음해 육군 소장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부정당했다.  1979년의 부마항쟁, 1980년의 광주항쟁, 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촛불까지 이어지는데, 나는 일련의 반독재 연속혁명이라고 부른다. 군사독재의 후예까지 완전히 청산하는 과정이었다. 부마와 광주항쟁은 육군 소장 전두환에 의해 짓밟혔다. 87년 역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며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2016년 촛불 항쟁에서도, 육군 소장 조현천이라는 자가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 왜 이 자를 잡아들이지 않나. 이해하지 못하겠다. 단호하게 응징할 필요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는 육군 소장들의 반란의 역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의식이 있다면 육군 소장이라는 직위를 ‘파 버릴 줄’ 알았다. (엮은이 주: 조현천 예비역 소장은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국군기무사령관이었다. 그가 탄핵 기각 상황을 상정하고 계엄령을 공포하고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려고 했다는 기무사령부 문건이 공개된 바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외국에서 도피중이다.)  우리의 경제성장 역시 놀랍다.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부유한지 느낀다. 매년 다르다. GDP가 작년 7위다. 그건 맞다. 한국은 엄청난 부자나라.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명을 달성한 국가)이라고 하는데, 우리를 포함해 일곱 국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한 경제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그러나 이면은 어떤가. 18년 째 자살률이 세계 1위다. 두 번 2위 했다. 자살의 내용도 안 좋다. 노인 자살률이 너무 높다. 어떤 해는 평균의 10배까지 나올 정도. 자연사를 앞둔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노인 빈곤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대체로 매년 48~52% 수준이다. 유럽은 3~5% 사이다. 이런 나라가 없다. 부산, 광주 등지에 강연을 하러 가는 일이 잦다. 오전 10시에 강연하러 가면 오전 6시에 집을 나서는데, 그 시간에 폐지 줍는 노인들이 정말 많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잘 산다는 나라에서 노인들이 폐지를 주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힘이 처지면 목숨을 끊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우울증 발병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아이들은 온 세상이 궁금하고 즐거워야 한다. 한국 아이들은 기적적으로 우울해.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그 어린 나이부터 경쟁을 시키고 지식을 주입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하다. 자산, 부동산 불평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상위 1%가 50.5%를 가지고 있다. 상위 10%가 96.4%를 가지고 있다. 하위 90%가 3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정태인 씨는 “한국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공동체다.”라고 했다. 그 말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정도로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노동시간을 보면 어떤가. 작년 독일의 노동시간이 1,300시간이다. 지금 한국 노동자들은 2,000~2,100시간이다. 5개월 더 일한다. 노동 기계라고 봐야 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떤가. 가장 심각한 주제다. 소위 산업재해 사망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산업재해가 아니라 기업살인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고 24년째 1위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4만 명이 넘게 죽었다. 일 년에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 작년에 2,400명 죽었다. 이 정부 들어서 더 늘고 있다. 이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것이 정상 상태인가. 이것은 내전이다. 자본과 노동의 내전이 일상화된 것이다.  영국이 유럽에서 기업살인으로 가장 악명이 높다. 영국은 계속 유럽 1위였다. 이것이 너무 크게 사회적 문제가 되어 2008년에 법을 개정했는데, 산업재해법이 아니라 기업살인법(엮은이 주: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살인에 준하는 단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을 누더기 법으로 만들고, 오히려 노동자가 더 많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자식을 낳지 않는다. 출산율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인류 역사상 합계출산율 ‘1’이하가 2년 연속 지속된 적이 없는데 우리는 4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가르치는 여학생들에게 ‘아이들을 안 낳을 생각이냐’고 물으면, 전원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이유를 물으면, 이 지옥 속에 내 아이를 넣을 자신이 없다고 한다. 너무 처절한 말이다. 다른 학생들이 다 공감한다. 이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묻는다. 이렇게 훌륭한 민주주의를 하고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까지 된 나라가, 모든 국민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해놓고 있는 나라가, 지옥같은 일상을 만들어냈는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래서 주식과 가상화폐에 의존하는 카지노 자본주의에 빠져 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나.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도 되었는데 한국사회는 왜 이런가? 우리 일상은 왜 지옥으로 가나. 잘못된 정치에 그 원인이 있다. 수구-보수 과두제  우리 삶을 규정하는 법을 만드는 이들이 여의도에 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가. 국회의원 300명 중 294명이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 이런 나라는 전세계에 없다. 자유시장경제는 인간과 같이 못 간다. 이 점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좋은 걸로 한국인들은 안다. 놀라운 오해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물론 있다. 그걸 이미 봤다. 지난 세기 내내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경쟁했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왜, 어떻게 이겼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인간은 사회주의를 할 수 없는 동물이다.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계몽주의 이래 근대의 선각자들이 꿈꾸었던 이성의 기획이다. 모든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고 그 인간들이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인간의 탐욕에 기대서 생겨난 체제가 자본주의, 이성에 기반해 구성된 체제가 사회주의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이성의 기획을 수행할 정도의 존재가 아니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동유럽을 중심으로 붕괴했다.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비효율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효율성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이겼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효율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놓아두면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야수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사자, 호랑이, 표범… 야수들은 멋있고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을 잡아먹는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이 가장 정곡을 찌른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은 ‘현혹’이다. 눈을 부시 게 해서 정체를 못 보게 한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그처럼 꿰뚫는 말이 없다.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야수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면 자본주의를 유용하게 쓸 것인가. 효율성을 살리되 야수성은 통제해야 한다. 이 야수에게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채워서 통제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시장경제’. 독일은 메르켈의 보수당이 그렇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체제 내에 필연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실업과 불평등이다. 자본주의를 잘 활용하려면 실업과 불평등 문제, 그에 따르는 불안과 빈곤을 국가가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국가가 개입해서 자본주의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어떤 수단으로 하는가. 당연히 조세다. 사회복지국가는 조세국가다. 정의로운 조세를 통해서 조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실업은 어떤 문제인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본다. 우리처럼 실업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독일 연방의원 가운데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300명 가운데 294명이다. 이것이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유민주당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보수 정당인 기민당/기민련이 사회적(social)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독일의 사민당은 사회주의적(socialistic)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시장경제를 인정하지만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사는데 조건이 되는 영역은 시장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 주거, 의료. 독일에서는 대체로 의료체제의 70% 이상이 공공병원이고 대학은 96%가 국립대학이다. 이보다 더 왼쪽에 있는 녹색당 역시 시장경제를 인정하나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또 한 당은 좌파당이다. 좌파당만은 시장경제에 반대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한다. 그런 정당도 8% 가량 득표했다. 지난번 의회에는 이런 4개의 정당이 있었다. 이런 의회에서 어떤 정책을 만들까?  그러나 한국 국회는 전부 인간을 잡아먹는 법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다. 민주주의, 정권 교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치 지형과 체제가 잘못되었다. 아무리 선거를 해도 우리의 불행은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진보고 국민의힘이 보수라는 인식은 당연히 잘못이다. 한국 정치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경쟁 구도가 아니다. 수구와 보수의 70년 과두 지배 체제라고 보아야 한다. 수구와 보수가 4대 6, 6대 4로 구도를 형성하는 체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좋은 보수가 없다는데 있다. 보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다. 여기서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자유주의다. 보수는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 민족을 중시한다. 이런 공동체의 과거, 현재, 곧 문화와 역사를 중시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가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공동체’를 주장하면 빨갱이라고 지탄받는다. 민족은 친북이라고 공격받는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 도망가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한다. 이런 보수는 세계에 없다. 이런 자들은 보수가 아니다. 수구라고 불러야 한다.  문재인 정부 정도가 그저 보수와 유사한 정도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사명은 좋은 보수가 되는 것이라고 항상 말해왔다. 그래야 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진보를 자칭하니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진보를 갉아먹는 것이다. 좋은 진보가 등장할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사명인데 끊임없이 진보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를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진보세력의 잠재력만은 매우 크다. 정치지형의 불리함과 국민 인식을 넘어선다면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정치지형이다. 김종인씨가 한국 정치 전면에 등장해 있다. 그것은 그가 계몽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 국민들이 자꾸 헛갈린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다른 정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김종인씨가 몇 번을 왔다갔다 했나? 두 당이 같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 정당의 차이는 하나다. 김정은에 대한 시각 뿐이다. 그러나 이재용을 어떻게, 한국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똑같다. 대북정책이 조금 바뀌는 것 뿐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이제는 정발 대안적인 정당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가장 중요한 해법은 선거법 개정이다. 민주당의 작년 선거법 개정은 추한 일이었다. 민주당의 자기부정이며 기회주의적인 행태라고 칼럼을 쓴 뒤 공격을 당했었다. 독일처럼 사표가 발생하지 않는 선거법, 민심이 표심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선거법이 만들어진다면 한국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20% 이상 득표할 것이라 본다. 환경, 생태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정당도 5% 이상 얻어서 여의도가 다양한 정치세력이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지금 두 개의 정당이 야합하는 수구-보수 과두 체제가 한국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고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강연 마치겠다.

Date 2021.08.30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정세 : 팬데믹 바이러스의 ‘기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정세 : 팬데믹 바이러스의 ‘기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정세 : 팬데믹 바이러스의 ‘기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1 | 조회 8462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정세 : 팬데믹 바이러스의 ‘기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 김석정 편집위원/정책위원회 의장   2020년 시작과 함께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많은 익숙한 것들과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또한, 리오데자네이로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미국의 허리케인과도 같은 의외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지난 일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지식은 늘어났으며,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방백신과 치료제들이 만들어졌다. 또한, 어떤 방역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아닌 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경험들도 쌓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 바이러스의 창궐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하는 점에 대한 단초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몇 회에 걸쳐 이러한 단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의 기원이 과도한 개발에 따른 기후위기라고 한다. 과연 이런 접근은 올바른 것일까?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기후위기의 기원은 무엇일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처음 퍼져나가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떠돌던 이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팬데믹이 ‘기후변화와 깊이 연결된 현상’으로, 그 원인은 단순하게는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온 것이나, 이보다 ‘좀 더 근본 원인이 있다’면서 그 범인으로 기후 변화를 지목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산림 벌채, 광산 개발, 댐 건설, 도로 개통, 신도시 건립, 축사 조성 등으로 야생 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됐고 이런 파괴가 생물 다양성을 줄여 코로나19 같은 병원체가 퍼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성찰과 결국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격하게 공감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 불편한 점을 감출 수가 없다. 즉, ‘근본 원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감하지만, ‘근본 원인’과 ‘단순 원인’을 이어주는 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어쨌든 문제는 기후 위기’ 식의 접근이 가진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많은 과학적 발견들은 기후 위기의 시작점을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는 1800년대 초로 보고 있다. 즉, 자본주의의 본격화와 함께 지금 겪고 있는 기후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했던 팬데믹인 흑사병에 의해 당시 인구의 절반 가량이 사망했다고 추정하는 것처럼 위에 지적한 ‘근본 원인’인 기후 위기 또는 이를 초래하는 현상들이 나타났던 시기 이전에도 팬데믹은 존재했다(참고로, 몽골 초원에서 발생한 흑사병이 몽골의 서진으로 인하여 유럽으로 전파 되었다는 기존의 통설은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이 동쪽으로 전파되었다는 유전자 분석 결과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전편에서 밝힌 바와 같이 통념에 의한 ‘기원’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즉, 생물 다양성의 감소가 팬데믹의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이러스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를 훌쩍 뛰어 넘으며, 인간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동물, 심지어 식물까지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이번 팬데믹을 기후 위기 또는 그에 따른 생물 다양성의 감소에 두는 것은 오류라고 볼 수 있다. 팬데믹은 ‘단순 원인’이 다른 여러 요인들과 결합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 – 기후 위기 중심의 관점에서만 이번 팬데믹을 바라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코로나 19 팬데믹의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기후 위기는 그에 못지 않은 재앙을 가져올 수 있기에 우리는 모두 이에 주목해야 한다.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흑사병, ‘스페인 독감,’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기원’과는 달리 기후 위기의 ‘단순 원인’은 비교적 정확히 밝혀져 있다. 바로, 1800년대에 산업혁명이라는 형태로 시작된 인간의 활동이다. 이윤을 위한 생산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인 지리적 확장을 거듭해 20세기 후반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 체제의 수립, 유지 및 존속을 위하여 수반된 인간의 활동은 인간이 그 일부이기도 한 자연과의 물질 대사를 파괴하고 있다. 이렇게 파괴된 물질의 순환은 자연을 많은 생물종이 살기에 부적합한 정도로까지 몰고 가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양심적 자유주의자들의 처방대로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에코백, 텀블러 등등),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대중교통 이용, 적정 실내 온도 유지 등등) 숲을 가꾸고, 육식 섭취를 줄이면 될까? 이런 처방이 나름대로의 유효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생태 발자국을 줄이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정신을 각성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이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이라는 깨달음에서 나와 한 개인의 실천을 넘어서는 사회적 실천에 이르지 못한다면 다만 정신 승리에 머물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실천과 무관하게 자본주의 체제는 그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까지도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파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에 나설 때이다.   

Date 2021.08.30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현장 :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와 좌파의 역할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현장 :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와 좌파의 역할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현장 :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와 좌파의 역할 (1)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4 | 조회 8843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현장 :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와 좌파의 역할 배성민 부산시당 전 위원장  2014년 신라대 청소노동자는 부당한 해고에 대처하기 위해서 대학 본부 농성과 사범대 옥상 고공 농성 투쟁을 전개하였다. 2014년 5월 13일 79일간 이어진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이 승리로 끝났다. 새천년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중재로 신라대 박태학 총장과 협약서를 작성하여 노동자 전원 복직과 고용 보장을 보장받았다. 힘겨운 투쟁 끝에 청소노동자들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었다. 2020년 11월 김충석 총장으로 바뀐 후 신라대는 2021년 3월 1일부터 청소 용역 업체와 계약 해지를 단행하고 청소 노동자 집단 해고를 했다. 학교는 청소노동자 없이 대학에 자체적으로 청소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는 이에 반발하여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2월 23일 집단 해고 반대 농성에 돌입했다. 이 농성은 6월 16일까지 이어졌고 투쟁 142일 만에 직접 고용 쟁취로 마무리 되었다.  신라대학교(총장 김충석)와 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조(위원장 박문석)가 6월 16일 오전 9시 30분, 대학 본부 접견실에서 극적으로 합의를 하였다. 합의 내용은 투쟁하는 조합원 모두를 대학이 직접 고용하고,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한다는 것 등이다.  부산일반노조 신라대지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투쟁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노동자들은 2012년 노조에 가입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알게 되었다. 청소 외 잡무에 대해 하지 않아도 되었고 법정 최저임금을 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투쟁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로 늘 해고 위험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2014년 79일간 농성 투쟁을 했고, 2021년 142일간(농성 114일) 투쟁을 했다. 10년 간의 끈질긴 투쟁 속에 직접 고용을 쟁취하였다. 사진  : 비주류사진관 정남준  신라대 투쟁이 끝나고 청소노동자들은 이번 투쟁의 승리의 공을 연대자들에게 돌렸다. 142일간의 투쟁 기간 속에 수천 명이 신라대를 찾았고 많은 사람들이 투쟁 지원금을 보냈다. 전국적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 전국에서 노력했던 것이다. 그 중에 진보정당 동지들의 공도 컸다.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 변혁당 등 진보정당 동지들이 정기적으로 농성장을 찾으며 연대를 해왔다. 꾸준한 진보정당 동지들의 연대로 직접 고용 쟁취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요즘 부산에서도 노동당 중앙에서 좌파 활동가 통합과 진보정당 연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상부에서 간부 중심으로 좌파 조직이 통합되어도 ‘1+1=2’가 될 수 없다. 현장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하며 진보정당으로 투쟁 승리에 정치적 역할을 할 때 좌파 활동가들의 통합이 성사된다. 신라대 142일간의 투쟁이 부산 지역 좌파 정당 및 단체 활동가에게 큰 울림을 줬으리라 생각한다. 현장과 지역에서 실천을 통해 진보좌파 활동가들이 한 곳에 모이기를 염원해본다. P.S. 142일간 신라대 농성 투쟁에 함께해주신 노동당 동지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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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사람 : 현장을 바꾼 30년의 실천과 연대 - 고미경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사람 : 현장을 바꾼 30년의 실천과 연대 - 고미경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사람 : 현장을 바꾼 30년의 실천과 연대 - 고미경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8505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사람 : 현장을 바꾼 30년의 실천과 연대 - 고미경 안보영, 적야 편집위원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에서는 현장에서 30년 동안 활동하며 실천하고 있는 고미경 당원을 만났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연대예요. 그리고, 실천이고 그래서 저는 제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 하루도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어려운 사업장에 찾아가면서 연대하는, 실천하는 노동자가 되고 싶어요”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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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2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2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2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8323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2 >>>>>>>> COMING SOON~~ <<<<<<<<<<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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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도서 : 마르셀 모스 [증여론]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도서 : 마르셀 모스 [증여론]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도서 : 마르셀 모스 [증여론]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9662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도서 : 마르셀 모스 [증여론]  최종왕 / 대전시당 위원장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재화와 가치가 모든 인간에게 공유되는 질서를 과거에 실재했던 사회적 관습에서 찾아본다.  마르셀 모스는 (1872~1950)는 프랑스의 인류학과 민족학 방법을 연구하며 프랑스 인류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 사회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주의적 열정을 강하게 나타냈고, 이국적인 사회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그는 사회주의적 열정으로 당대의 문화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을 넘어 ‘공산주의적 열망’을 원시 사회의 풍습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하였고 [증여론]은 그 노력의 성과로 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원시 사회의 ‘선물’ 형태에 천착한 모스의 [증여론]은 자신의 아내나 딸을 손님과 동침하게 하는 이누이트의 풍습이나 신에게 자신의 장자를 바치는 아브라함의 인신공희 등 고대로부터 다양하게 드러나는 ‘선물’의 기원에 관하여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예물, 제물, 교환 등과 다른 증여, 기부 등의 자발적 선물에서도 “겉으로는 자유롭고 무상으로 보여 자발성을 띤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제적이며 의무적인”성격을 발견함으로써 이러한 ‘선물’들의 총체적 성격을 엿보게 한다.  마르셀 모스가 원시 사회의 교환 체계를 “총체적 사회 현상”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급부’ 체계 – 일정한 조건이 합치할 때 일어나는,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 가 아닌 그 사회의 종교적, 법적, 정치적, 도덕적 규범이 내포하면서 급부의 특수한 형식이 동시에 나타남을 나타낸다. 마르셀 모스는 이러한 총체적 급부 체계를 아메리카 지역 포족(혈연)의 동맹 관계에서 발견한다.  포틀래치란 ‘식사를 제공한다’는 알레스카 지역 원주민들의 방언인데, 이 포틀래치는 두 포족 간 존경의 표시로 음식을 후하게 제공하는 단계에서 때로는 부를 과시하거나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 ‘파괴’를 수반하는 과도한 소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적 소비가 일상적이고 흔하지는 않지만 모스는 원시 공동체의 증여-교환 체계를 포틀래치라 부른다.  흔히 ‘선물(혹은 증여)’이라 할 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을 의미하나 총체적 급부 체계로서의 ‘포틀래치’는 주기-받기-답례의 과정이 권와 의무로 인식된다. 다시 말해 공통의 토템을 갖는 포족이나 동맹 관계 사이에서 포리틀래치를 주거나 받는 행위, 답례에까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의무적’으로 강제되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교역이나 매매의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전 과정이 ‘의무’로 간주되는가? ‘선물을 받을 권리’와 ‘주어진 선물을 받아야 하는 의무’가 동시에 성립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인가?  원시 사회에서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 영적 유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물건과 사람은 죽은 조상과 신들로부터 유래하여 그 모든 것에 ‘영’이 있다고 느낀다. 주거나 받은 선물 속에도 제공한 사람의 정신이나 영혼의 일부가 내재하여 선물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이나 집단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이며 증여자의 영향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 영향력은 증여자로부터 앙심을 살 때 자신의 재산이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어진 선물은 기쁘게 받아야 하고 일방적 주술에 상응하는 ‘답례’를 통해 상대의 종속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나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것이 ‘답례’라 할 수 있다.  주어진 선물에는 증여자의 영혼이 깃들어 거부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불신으로 비치고 이는 곧 적대적 관계의 선언으로 인식된다. 또한 받은 것보다 과도한 ‘답례’는 답례자의 권위와 명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으로 인식되어 ‘의무’임과 동시에 ‘권리’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의무와 권리의 양면을 갖는 포틀래치는 일방의 이익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행위이고 두 당사자들 사이에 우호적 감정을 나타내는 증표로 인식된다.  분배와 재분배의 과정이 급부와 반대 급부가 결합된 ‘거래’ 관계가 아니라 사회 일반을 관통하는 ‘총체적 관계’로 인식될 때 법과 강제 규범을 넘어서는 고도의 ‘계약 관계’,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물건(혹은 영혼)이 죽은 조상으로부터 왔음으로 인해 모두에게 공유(증여)된다. 모든 재화가 인간의 ‘노동’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로부터 생산된 재화와 가치가 모든 인간에 의해 공유되는 질서를 ‘포틀래치’에서 찾아본다.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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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영화 :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감춰지고 사라지는 노동에 관한 관찰기 <언더그라운드>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영화 :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감춰지고 사라지는 노동에 관한 관찰기 <언더그라운드>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영화 :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감춰지고 사라지는 노동에 관한 관찰기 <언더그라운드>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9548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영화 :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감춰지고 사라지는 노동에 관한 관찰기 <언더그라운드> 박수영  지난 8월 19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버스를 타라(2012)’, ‘그림자들의 섬(2014)’를 통해 한진중공업 노동 운동을 조명한 김정근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이 선택한 현장은 가장 일상적인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이다.  영화는 점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반 30분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지하철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언더그라운드”인 정비창, 기관사, 관제실, 청소 노동자의 노동 현장을 그야말로 ‘가감 없이’ 전달한다. 이 부분까지의 노동자들은 비록 눈에 잘 띄지 않고 몸은 힘들어도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초반 30분이 넘어간 시점부터는 이 구조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모든 운행이 끝난 후 터널과 선로 공간을 주로 조명하는 중반부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작업 방식을 보이는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한 단계 더 “언더그라운드”로 진입한다. 밝은 파랑과 어두운 파랑으로 구분되는 옷을 입은 노동자들은 색 뿐이 아닌 작업 형태에서도 확실히 구별된다. "비정규직들은 일일이 발로 걷고, 손으로 툭툭 치는 거고. 정규직은 뭐 타고 가잖아요. 그런 거 보면 누가 비정규직이고 누가 정규직인지 다 티 나요." 현장 견학을 온 한 취업특성화고 학생의 얘기이다.  비정규직보다 더욱 “언더그라운드”인 하청 노동자의 이야기까지 진행한 영화는 여기도 아직 바닥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전 시기 무인매표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매표소 직원들의 인터뷰로 시작한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규직, 그 중에서도 기관사에게 시선을 돌린다. 영화 초반 새벽 4시에 출근해 마감 시간까지 열차를 운행했던 한 기관사는 이번에는 대낮에 회사로 출근한다.  그가 찾아간 곳은 코레일 인재개발원 적성검사장. 이 곳에서 화면에 나타나는 도형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훈련을 한 기관사는 훈련 종료 후 무인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전문직이라서 외주화, 비정규직화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기관사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 무인화 등 계속 이어지는 “언더그라운드”의 노동 현장은 이제 그 곳으로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취업특성화반 학생들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더욱 큰 울림을 가져온다. 영화 초반 비록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기관사가 운전하는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지만 나중에는 “머스탱을 타고 폼나게 달리는” 꿈을 얘기했던 소년은, 현장 견학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티 나는” 현장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하청 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여 자동화 기계에 맞춰 버튼이나 누르는 “버튼맨”이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 “전문직 노동자”인 기관사가 받은 직업 훈련 역시 “도형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인데, 이 끝없이 “언더그라운드”로 추락하고 있는 노동의 경향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구의역 사건,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자살 등 극단적이고 이슈화된 사건을 전혀 다루지 않은 점 역시 이러한 폭력적 경향의 일상성을 더욱 잘 드러낸다.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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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사진 : 자본 범람 지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사진 : 자본 범람 지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사진 : 자본 범람 지대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8255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사진 : 자본 범람 지대 현 린 편집위원 서울 망원동은 ‘지대’가 낮아 장마나 태풍이 올 때마다 자주 강이 범람했다. “영감은 없어도 장화는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에는 조선총독부가 이 일대에 대대적인 제방공사를 했다. 1972년에도 홍수가 나서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제방을 보강하고 망원유수지를 만들었다. 지금의 성산대교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한 망원동 서쪽의 이 제방은, 오랜 세월 홍제천과 마을 사이의 벽이기도 했다. 1984년 대홍수 때엔 망원유수지 수문이 파괴되어 큰 수해를 입었다. 1만 7천여 가구가 물난리를 피해 짐을 싸야 했다. 북조선에서 남조선의 수재민을 돕겠다며 쌀을 보내온 것도 이 때였다. 이 사건 이후 수재민들은 서울시를 상대로 최초의 집단소송운동을 벌였고, 마침내 승소한다. 이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을 썼던 조영래였고, 함께 소송에 참여했던 변호사들과 함께 이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즉 민변을 구성한다.  제방을 재정비한 후 ‘지대’가 낮아서 재해를 입는 일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는 ‘지대’가 높아서 주민들이 짐을 싸기 시작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물결이 제방이 없는 동쪽으로부터 넘어오기 시작한 때문이다. 이른바 강북의 타워팰리스를 비롯해서 고층고가의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성산대교 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제방 아래 마을은 보이지 않고, 이들 높고 거대한 자본의 전위들만 보인다.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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